어떤 여자 얼굴 2020년 초였던가,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거의 가본 적 없는 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나서자마자 역사 안을 가득 메운 광고 이미지에 나는 기이한 느낌에 압도당했다. 창백한 피부의 눈이 시릴 것처럼 정돈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들이 줄지어서 반짝였다. 광고판을 밝히는 푸른 빛이 마치 아우라처럼 그녀들을 감쌌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녀들의 얼굴은 대체로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눈은 크고, 코는 높게, 얼굴은 갸름하고 입술은 도톰한, 피부에는 어떤 얼룩이나 주름도 허용하지 않는 반듯함. 때로는 부위별로 도려진 파편화된 이미지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거나, 얼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재조합해 만든 새로운 얼굴을 전시하는 이미지들의 행진은 당시 보았던 어떤 작품이나 전시보다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여성의 얼굴을 그릴 때마다, 문득 그 공간이 떠오른다. 사람 크기로 나란히 벽에 걸려, 분명하고도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던 이미지들의 힘을 떠올리며, 나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 것인가’보다는 ‘어떤 이미지를 만들지 않고, 전시하지 않을 것인가’를 오래도록 고민하게 된다. 미래의 방식 게임 는 위기의 지구를 벗어나 외계 행성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내용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도시를 건설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며, 여러 방식으로 인류를 새로운 행성에 뿌리내리도록 한다. 게임의 특징 중 친화력(Affinity)이라는 항목이 있다. 조화, 우월, 순수로 분류된 세 가지 항목은 플레이어가 어떤 성격의 문명을 이룩할 것인지에 대해 영향을 끼친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에 살던 외계 생물과 서로를 받아들여 유전적 연결고리를 만들며 진화하거나, 의 Borg처럼 고도의 기술발
나의 작업은 염세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아포칼립스를 대비하는 미래의 인류에 대해 그린다. 한국과 일본의 1990년대 게임과 만화의 세계관을 참조한 나의 그림들은, 모성과 여성성을 다루는 것에서 출발해 인류세를 지나며 지나치게 비대해진 인간의 자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들로 주제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작업에서는 산과 사람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문어나 새와 합쳐 지기도 한다. 기후 위기와 전쟁 등으로 어두운 지구의 미래에서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같이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는 방법을 제안한다. 다른 종으로의 ‘변신 연습’을 꾀하는 생물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다원적이고 경계 없는 신인류의 모습을 그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기대와 달리 추하고 통제 불가능한 자신의 피조물을 혐오하고 배척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미끄러지는 붓의 스트로크가 구성하는 작품의 생생함과 새로움을. 나는 나의 의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무엇인가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My work depicts a future humanity preparing for the apocalypse based on pessimistic thinking. Referencing the worlds of games and comics from Korea and Japan in the 1990s, my paintings start from dealing with motherhood and femininity and expand the theme to attempts to redefine the place of humans, which has
2022년과 2023년의 단어들 나의 지구를 지켜줘, 새인간떼, 어딘가에 있을 나의 딸에게, Soldier of fortune, 소녀-아줌마, 소녀의 싸움, Twilight zone, 밤물결, 우리들의 길, 아까시 향기, 알로에, 땅처럼 껴안기, 사랑과 심장과 하트, 거인, 날개 달(아주)기, 지네소녀, 우리가 나눈 짙은 꿈, 두발 다른 쪽이 디디고
Pictures of a Nasty Dual Relation Nam Woong The difficulties of contemplation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solo exhibitions by the artist Heoang Kim, we find a space of around five years. During this time, she experienced the process of pregnancy, childbirth, and child-raising—evincing transformations both in her personal life cycle and in her artistic approach. Kim’s first solo exhibition BAD ENDING~An evening when something ominous could happen~ came in 2015 during the archive bomm. The detached, achromatic forms emerged from her observer’s attitude as she spent time around the streets of central Seoul’s Gwanghwamun area, which was constantly buzzing with various events and demonstrations. The images in this exhibition embodied an attitude of cynicism combined with self-awareness of the artist’s own contemplation and apathy (or perhaps
손끝을 빠져나가는 털의 감각 무심코 손을 집어넣으면 손가락 사이로 성글게 빠져나가던 부드럽지도 뻣뻣하지도 않은 털의 촉감을 떠올린다. 살짝 접히다가 제자리로 튕겨져 나오던 귀의 질감, 책상 밑으로 발을 뻗으면 닿던 따뜻하고 긴 몸통의 형태를 그려 본다. 죽음이라는 분기점을 지나고 우리의 세계는 갈라졌다. 밀봉된 비닐에 갇힌 한 줌의 털을 보며 네가 속한 세계에 대해 상상했다. 건널 수 없는 다리의 반대쪽 모습은 어쩐지 내가 오래전에 접속했던 어떤 장소를 닮아 있을 것 같았다. 바다가 보이는 절벽 이라는 90년대 RPG 게임이 있다. 주인공은 마법사의 제자로 마법사가 되기 위해 수련을 시작한다. 스승이 내는 퀘스트를 순차적으로 해결해서 마법사가 되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이지만 나는 단 한 개의 퀘스트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종종 플레이했던 이유는 게임 속에서 산책하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마법사의 숲과 바다가 보이는 절벽, 박쥐가 사는 동굴과 얼음 성, 열대 지방의 해변 등을 이유 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실제로 산책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오직 256색으로만 구현된 저화질의 그래픽과 소박한 BGM이 울려 퍼지는 모니터 속의 세계는 실존하지 않는 장소에 대한 향수를 구현하기에 충분했다. 플레이어는 괴물을 물리치지 않는다 나는 3등신의 플레이어를 그림에 내려놓는다. 직접 갈 수 없는 세계로 접속할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을까 오래도록 생각했다. 잃어버린 상대를 찾아 이름표를 채우는 것이 최종 목표라면 이룰 수 없는 시시한 바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다. 관찰하고 연구하되 사냥하고 약탈하지 않는 플레이어